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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용사 모험담

2. 두 번째 퀘스트: 그래서, 못하는 자신을 어쩌실건가요? 본문

스쿼시 편

2. 두 번째 퀘스트: 그래서, 못하는 자신을 어쩌실건가요?

스트레스 용사 2024. 5. 9. 10:30

 

'못함'에 대해 쓰는 건 괴롭다 단순히 실패를 말하는게 아니다. 당시의 감정과 상황을 더듬거려 기억을 찾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못함²을 잘함의 발판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맞닥뜨리면 괴롭고 스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못하는 과정 없이 잘 할 수 있었으면. 전 배우지 않고 그냥 잘하고 싶어요. 왜 배움에는 스킵버튼이 없나요? 그거야, 배우는 건 모 사이트의 광고가 아니니까요.  

 

2023년으로 시간을 돌려서³,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2월이었다. 그때부터 나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와 달리 처음부터 잘 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한 달 먼저 시작했지만 여전히 공도 못 맞추는 나에 비하면 그 분들은 공을 잘 맞췄고, 선생님의 더 많은 칭찬과 더 많은 지도를 받았다. 나는 살아온 시간 중에 가장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중이었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치는데 나는? 나는 마치고 남아서 연습도 하는데 뭐지? 이때부터 였을까. 강습은 호러영화가 됐다. 그런데 이제 주연이 나인. 매주 화, 21, 비교와 함께하는 좌절의 스쿼시 강습!

 

단순하게 열등감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나에게 비교는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문제다. 니체가 말했듯 심연속으로. 퀴퀴하고 습한 내 심연과 다른 사람의 노력을 비교하기.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깜찍하고도 잔인한 짓인가. 누구나 마음 속에 심연 쯤은 가지고 있잖아요. 삼천원이 아니고? 애초에 상처라고. 아 네.

누군가는 그 비교로 발생한 열등감을 원천삼아 자기를 더욱 발전시킨다. 하지만 나는 저누군가에 속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나에게 비교는 우울 삽화만 가져올 뿐이다. , 스트레스도 덤.  

 

비교를 멈춰야 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내면의 나는 에반게리온 초호기처럼 폭주했고 이카리 신지처럼 공포에 떨었다. 다른 사람들과 공개적으로 하는 강습에서 비교를 멈추기는 어려웠다. 그건 어쩔 수 없지. 내 눈으로 다른 사람들이 치는 걸 보고 나도 치는데. 비교를 어떻게 멈출까. 다만 매 순간이 새롭게 비교대상이 될 뿐.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수가! 2월의 절망은 겨울만큼 차가웠다. 못함을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다잡아도, 비교는 그렇게 다잡은 마음을 손쉽게 잘랐다. 괜히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는 행위가 가져오는 정신적 피해가 큰 게 아니다. 용사님, 본인은 스스로 위해를 가하셨네요. 용사답지 않네요. 혹시 스쿼시장 가보셨나요? 아니요. 사진이라도 보여드릴게요⁴. 어떻게 비교를 안하게 생겼을까요. 아래처럼 뻥 뚫린 곳에서 배우고 경기를 하는데요. 전 강제로 내 앞의 사람이 어떻게 치는지 봐야한답니다.^_^ .

스쿼시 경기장. 스쿼시 선수들은 사방이 유리로 된 경기장에서 스쿼시 경기를 치른다. 연습하거나 수업이 있으면 저기 구석에 빠끔히 보이는 의자에 앉아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대부분은 다음 강의를 기다리거나 경기 차례를 기다리는 거지만.

 

심지어 바로 앞사람의 공에 선생님이 굿 샷이라고 말하면 그 말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돌아온다. 마치 스쿼시 공처럼, 그리고 난 그걸 못맞히고 좌절하고반복, 반복,반복, 반복.

 

마침내, 나는 한계에 도달했다. 마참내! 나는 뽑히기 직전의 앞니처럼 마구마구 흔들렸다. 2월의 마지막 주엔 강습을 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28일 밖에 없는 달이라 가지 않으니 죄책감이 비구름처럼 몰려왔다. 결국 비구름은 비를 뿌렸다. 내 정신이 젖든 말든.  그렇게  2월이 사라졌다. 2월이.

그런데 왜 그만두지 않으셨나요? …그러게요. 이게 참 이상하단 말이죠. 저는 그만둔다는 생각만 했어요.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구요. 그럼, 이유는 묻지 말죠. 때로는 묻지 않는게 좋을 때가 있어요. 잘 하셨어요. 용사님. 그런가요? 물론이죠. 무언갈 지속한다는건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랍니다.

 

 

1.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쓴 글을 이제야 수정해서 올리는 게으름을 보라.

2. 나는 실패와 못함을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하고도 실패하는 일들이 있다. 당시의 나는 못했다. 다른 수식어 없이.

3. 최근에 들은 철학 강의에 따르면, 시간 여행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그걸 왜 철학에서 다루냐고요? 저도 몰라요. 이에 대한 논의를 한 사람은 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 그리고  Coursera 철학입문 마지막 강의에서 시간여행을 다룬다.(에든버러 대학교의 강의)

4. 사진은 스쿼시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직접 찍었다.